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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방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한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높이 올라야 하며, 더 오래 살아야 한다고 부추긴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처럼 살기 위해 버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진정으로 ‘사는 것’은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헌신하는 삶 속에 담겨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아무 죄도 없으셨던 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셨다. 사람들은 실패라 여겼고, 절망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죽음은 곧 부활의 시작이었고, 영원한 생명의 문이 되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심으로, 오히려 가장 충만한 생명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그것은 소멸이 아닌 완성, 패배가 아닌 승리였다. 이순신 장군도 그랬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라 외쳤던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고, 결국 나라를 살렸다.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결코 물러서지 않았고, 자신을 던져 백성과 조국을 지켰다. 그가 살아남으려 했다면, 역사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죽음 앞에 선순간마다 오히려 살아 있었고, 지금도 살아 있다. 이 두 인물은 우리에게 묻는다. 정말 사는 것이 무엇인가? 단지 육체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삶’인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초월한 어떤 가치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는 것이 참된 삶인가? 삶을 위한 발버둥은 때로 우리를 더욱 공허하게 만든다. 나 자신을 지키려는 집착은 관계를 무너뜨리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결국 내면을 메마르게 한다. 반면, 내가 움켜쥔 것을 내려놓고, 나 자신을 죽이는 순간—그 순간에 우리는 더 깊고 넓은 삶을 경험하게 된다. 이타적인 사랑, 무명의 희생, 조용한 순종—이 모든 것은 '죽음'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은 가장 충만한 ‘삶’의 실현이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얻으리라”(마태복음 16:25)고 하신 말씀은 단순한 종교적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이며, 역설 속에 숨겨진 진리다.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다.자기 자신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삶은, ‘살기 위해 애쓰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각오한 헌신에서 태어나는 삶’이다. 부활절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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