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햇빛 아래 거대한 돌기둥의 윤곽이 모습을 드러낸다. 콜로세움. 2000년 전, 수 만 명의 군중이 열광했던 이 원형 경기장은 이제 말없이 서 있다. 그 웅장한 외관 앞에서 나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시간의 깊이를 걷는 순례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콜로세움은 로마 제국의 힘과 위엄, 문명과 기술의 극치를 상징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안에서는 검투사의 피가 뿌려졌고, 무고한 이들의 죽음이 오락거리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키려다 순교한 장소이기도 하다. 돌 하나하나에 제국의 영광과 인간의 잔혹함이 동시에 스며 있는 이곳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인간 역사의 찬란함과 비극, 그 모든 모순을 응축한 현장이었다.
제국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거대했고, 로마 시민들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 아래 영원한 평화를 꿈꿨다. 그러나 로마는 무너졌다. 화려했던 제국은 쇠락했고, 경기를 즐기던 군중도, 권력의 중심에 있던 황제도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무너진 벽과 깎여나간 돌, 그리고 바람 속에서 속삭이는 침묵 뿐이다.
그 앞에 선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쌓은 영광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한 때의 정점도, 찬란한 문명도 결국은 시간 앞에 무너진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 위에 삶을 쌓고 있는가?
콜로세움의 중심 무대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피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때 이곳에서 생명을 잃었던 신앙인들의 피가 오늘날까지 그 믿음의 씨앗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았고, 생명보다 믿음을 택했다. 그리고 그들의 피는 교회의 기초가 되었고, 진리는 꺾이지 않고 이어졌다.
역사의 폐허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진다.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과 명예가 얼마나 일시적인지를 보게 되고, 그렇기에 더욱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고 싶어진다.
콜로세움은 무너졌지만, 믿음은 무너지지 않았다. 로마는 사라졌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 앞에 선 나는 고백하게 된다. 세상은 지나가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고.
나는 또 다른 여행지를 향해 걸어가지만, 콜로세움 앞에서 배운 겸손과 신앙의 무게는내 삶 속 깊이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