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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설렘
하나님의 때가 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르다. 그래서 믿음의 길은 항상 설렘이 있다.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지만 항상 하나님이 옳다. 그래서 낙심하지 않는다. 설렘은 참 좋은 말이다. 설렘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우리 인생은 설렘의 연속이다. 믿음의 길의 특징이기도하다.


기다림
믿음의 길에 있어서 "기다림"은 아주 중요하다. "조급하여 저지르지 않음"이 핵심이다. 조급하면 이스마엘, 기다리면 이삭이다. 오래된 유행가 가사중에 "안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가 있다. 서두르면 결국 이 노래를 부르게 된다. 조급하면 저지르기도 하지만, 편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불편, 편법은 절대로 믿음의 길이 아니다. 기다림은 그 자체로 큰 영적 훈련이다.


가장 쉽고 가장 어려운 것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다 하셨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다. 나의 전적 무능을 인정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하나님 앞에서 나를 증명하고 싶어한다. 난 할 수 있어, 난 생각보다 괜찮은 놈이다. 내가 누군지 보여주겠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서울", "자가", "대기업", "김부장"은 남들이 보기에 다 가진 것 같은 사람이다. 엄청 부러운 사람이다. 그런데 아들이 명문대학을 다니고, 아내가 미인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서울을 떠나고", "집도 팔고" "대기업에서 명퇴하고" "더 이상 부장도 아닐 때" 더 이상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in Seoul를 소망하지 않아도 될 때... 무엇보다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아도 되고. 그때부터 비로서 참 자기를 찾고, 전혀 다른 행복이 있음을 발견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행복과 만족의 길이 있음을 의미한다. 인정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누군가를 이기려 하지 않아도 되는...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인정받은 삶임을 아는 것이다.


완전한 하나님, 불완전한 인간
요나서를 보며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인간을 사용하시는 신비를 다시금 확인한다. 문제적 인간을 불러 다듬어 가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고, 설득하시는 하나님. 세번 부인한 베드로를 찾아오셨을 때도, 모세를 찾아오셨을 때도 그리고 나에게도.


사랑의 깊이와 크기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위해 큰바람, 큰폭풍, 큰물고기를 크신 은혜로 준비하셨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위해 동원하시는 엄청난 것들을 보며, 우리를 향한 사랑과 은혜의 크기와 깊이를 알게 된다. “내가 무엇이길래?” 이런 고백을 하게 된다


화장을 지우고
화장을 지웠는데도 예쁘다면 정말 예쁜 사람일 것인다. 겨울에 가로수의 나뭇잎이 다 떨어졌는데도 아름다운 도시가 정말 아름다운 도시다. 인생의 사막의 시간에도 여전히 영적인 견고함과 우직함을 지니고 있다면 정말 성숙한 신앙일 것이다. 평범한 반복된...


응원단장과 소방수
사람을 만나다 보면 두종류의 사람을 보게됩니다. 한사람은 응원단장같은 사람이고 또 한사람은 소방수같은 사람입니다. 소방수같은 사람은 쉽게 말해 분위기 깨는 사람입니다. 뭔가 잘되는 듯하다가도 이 사람이 나타나면 바로...


교만과 겸손(4)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노력도, 열심도, 선함도 그 무엇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누구도 완벽할 수도 완전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연약함, 실수, 부족함, 부끄러움은 항상 그림자처럼 우리를...


교만과 겸손(3)
바울의 말년에 고백중에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겸손을 향한 믿음의 싸움중에 하나가 "나는 죄인"이라는 분명한 이해입니다. 이것을 놓칠 때, 이 고백이 약화될 때 우리속에 교만이 머리를 들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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